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셸 네 (문단 편집) === 러시아 원정 이후에서 백일천하 === 그러나 러시아 원정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폴레옹에게 털리고 지금까지 잠자코 지내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슬슬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여태껏 믿고 있던 [[칼 14세 요한|베르나도트]] '''웬수'''가 [[스웨덴]]을 대프랑스 동맹에 가맹시키면서 뒤통수를 까자 나폴레옹은 [[충격과 공포]]를 맛보았다. 가장 먼저 프로이센이 '''"내 땅 내놔 이 개새끼야!"'''라며 반기를 들고 일어났고, 이어 오스트리아도 여기에 참가했다. 나폴레옹은 동맹군을 각개격파할 심산으로 급히 신병을 징집해서 라이프치히로 향했는데, 네의 군단은 뤼첸에서 표트르 뷔트겐슈타인 공이 지휘하는 러시아군에게 기습당했지만 나폴레옹이 이를 알아차리고 대응을 함과 동시에 네와 협공해서 쫓아냈다. 그리고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쪽수'''에 밀려 줘 터지고 열심히 쳐발린 뒤 [[파리(프랑스)|파리]]로 돌아오자 패색이 짙어졌다고 확신한 다른 원수들의 라인에 네도 가담했고, '''이어 나폴레옹에게 퇴위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이 퇴위 조약에 서명하면서 "군대는 내 말을 들을 거다!"라고 말하자 네가 한 대답이 정말 가관이다. '''"군대는 그들의 상관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당시 파리가 연합군에게 어떤 꼴을 당할 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나폴레옹이 결국 질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자명했다. 1814년 4월 16일 퐁텐블로에서 나폴레옹이 퇴위하고, 엘바 섬으로 유배당한 뒤 다시 복고된 부르봉 왕조에 충성했지만, 신 왕조에서 느낀 소외감과 부당한 대우에 분노한 그는 1815년에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자 다시 나폴레옹의 막하로 들어갔다.[* 이때 나폴레옹이 네를 맞이하며 한 대사는 가히 그가 대인배임을 알려주는 사례라고 해도 되겠다. 변명하는 네의 말을 끊더니 나폴레옹은 네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찌 프리트란트에서의 자네의 활약을 잊을 수 있었겠는가!" 이후 네가 군대를 이끌고 투항해버려서 파리가 함락되었고 루이 18세는 다시 파리를 탈출해야 했다.] 하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대리로 지휘하던 중 기병의 돌격통제에 실패하여[* 물론 네 혼자서만 한 것은 아니다. 그루시는 블뤼허가 와브르에 놔둔 '''미끼부대에 낚였고''', 나폴레옹 본인도 꽤나 실책을 저질렀다.][* 실제로 네가 러시아 철수 당시의 너무나 처참한 경험 때문에 [[PTSD]]에 시달리고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하는 연구자들도 있다.]로 프랑스군 기병대가 크게 손실되고, 여러 이유로 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결국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에게 붙잡혀 1815년 12월에 결국 총살당했다 향년 45세. 옛날 전우였던 [[오귀스트 마르몽|마르몽]]과 [[클로드 빅토르|빅토르]]는 투표를 통해 그를 죽이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그나마 옛 전우였던 아드리안 원수는 아예 네의 처형재판에 참석 자체를 안했고 그래서 루이 18세에게 작위를 박탈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